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영어를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흔히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들 한다.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나름 10여 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첫 만남에 어느 정도는 구분이 가능하다고 거만을 떨고 싶기도 하지만,
그 확률은 인생 좀 살아본 성인이 성실한 아이를 구분해내는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검증되지 않은 나만의 기준으로 구분한다는 점은, 초등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아이를 찾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란 걸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기가 자신 있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오만함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고 싶어 한다.
만약 그 기준에 내 아이가 못 미친다면 일찌감치 우리 아이는 글렀어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하고 단정 지어 버리거나,
그 기준에 맞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서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은 우리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반복과 많은 연습을 통한 습득을 요하는 ‘언어’라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는 공부를 통해 요령과 노하우를 학습할 수는 있지만,
꾸준한 연습이라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결국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
즉,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 요소이다.
나는 악필이고 그림을 잘 못 그린다.
모든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나의 말에
“그럼, 자기가 글씨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릴 수 있다는 말이네. 한번 해봐!”
라며 장난스럽게 도발한다.
“당연하지~ 내가 원하면 글씨도 잘 쓸 수 있고, 그림도 잘 그릴 수 있지!! 근데 난 그럴 마음이 없는데?!”
멋진 핑계였다. 그런 나는 타고난 손재주가 없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몇 년 전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기타를 시작하였고 뭐 제법 지금까지 잘 해내고 있다.
그걸 보면 손재주가 없지만은 않은 듯하다.
영어를 정말 싫어하던 학생이 멤버가 되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큰 욕심이 없으셨다.
얼마 후 그 멤버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기.. 적?”이란 말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지지자는 불여호지자요, 호지자는 불여락지자니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공자 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영어적 머리, 언어적 머리, 수학적 머리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성실한 자세와 태도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가?
Everyone is born with genius, but most people only keep it a few minutes. (Edgard Varese)
모든 사람은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단지 몇 분 간만 유지한다. (에드가 바레즈)
타고난 부분의 영향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보단 후천적 영향은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그 후천적 영향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영어는 더더욱 그러하다. 영어는 학습보단 습득의 영향이 더 큰 언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이, 신체적, 정신적 불리함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영어를 진심으로 하고 싶으면 영어를 할 수 있다.
영어를 못한다는 건 영어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정말 영어를 하고 싶어!!
…………………..
진짜 영어를 하고 싶나요?